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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라이프스타일 비교 : 조선·고려·일제강점기

by Wisetech 2025. 7. 27.

 

서민들의 삶은 시대 별로 얼마나 달랐을까?

같은 한반도 땅에서 시대에 따라 서민의 삶은 얼마나 달랐을까요? 먹고, 자고, 노는 법조차 완전히 달랐던 고려·조선·일제강점기 서민의 체감 현실을 실제 기록, 신문, 풍속화, 옛사람의 일기까지 바탕으로 흥미롭게 비교해 보았습니다.


1. 밥상의 문화 – 먹을거리의 전쟁과 밥상 풍경

  • 고려시대: 고려 농민들은 잡곡과 콩, 수수, 보리밥을 주로 먹었습니다. 『고려사』에는 “삼베옷에 보리밥, 콩국에 김치”가 서민의 상차림 표준이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고려 명종 때 ‘춘궁기 굶주림’을 견디기 위해 솔잎가루죽, 도토리묵을 먹었다는 흥미로운 실록 기사가 있습니다. 술로는 집집마다 주조한 곡주(서민 막걸리)가 사랑받았습니다. 연등회나 팔관회 같은 축제 때만 겨우 쌀밥과 잔치 음식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 조선시대: 『동국세시기』에는 사계절 밥집과 시장음식(두부찌개, 조기젓국, 된장풀 미역국)이 인기를 끌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서민 집에서는 매일 두 끼만을 먹고, 계절마다 시장에 나와 부추김치·달래장·생선구이·강정 같은 간식을 사 먹었습니다. 명절에는 떡국이나 송편, 그리고 민화에 그려진 ‘오색전병’을 준비했습니다.“봄볕 아래 아이들이 오가며 장터에서 꿀떡을 꿀꺽 삼켰다.” – 『동국세시기』
  • 일제강점기: 『매일신보』『조선중앙일보』 기사에는 콩자반, 무말랭이반찬, 멸치국, 개다래 과자, 뻥튀기와 메밀묵이 대표적 싼값 음식으로 자주 등장했습니다. 서울 시내 곳곳에 김밥집, 오뎅포장마차, 분식집이 새로 생긴 풍경도 신문에서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도시락 반찬 한 칸에 달걀프라이가 들어가면 “부위(富裕)의 상징”으로 통했습니다.


2. 집과 주거환경 – 집 한 채의 차이

  • 고려·조선시대: 평민의 집은 2~3칸 초가집 혹은 흙벽돌집이 기본이었습니다. 『목민심서』에는 “방 한 칸에 일가족이 모여 자고, 부엌과 헛간 사이가 구분되어 있다”라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온돌은 중북부 지방 위주로 개발되다가 조선 후기부터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집행일(이사날)에는 온 동네가 사륜 수레를 빌려 이사를 다녔고, 이사가 끝나면 새 집에서 떡, 술을 나눠 먹는 풍습이 풍속화에 그려져 있습니다.“기울어진 초가삼칸, 처마끝에 고추와 말린 곡식이 한가득 매달려 있었다.” – 『한국민속대관·가옥편』
  • 일제강점기: 경성(서울)에는 판잣집과 하숙방, 게다방, 아파트식 건물(조선아파트) 등 새로운 형태의 주거가 확산되었습니다. 쪽방, 옥탑방, 하꼬방에서 긴급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늘면서 신문에는 슬럼거리와 빈민촌에 대한 특집 기사도 실렸습니다. 『동아일보』 1927년 기사에는 “통행금지 어긴 하숙생 감금사건” 같은 구도심의 하숙문화 이슈가 실제로 보도되었습니다.

3. 여가문화와 놀이 – 노는 법의 하루

  • 고려·조선: 평민들은 씨름, 줄다리기, 널뛰기, 윷놀이라는 전통놀이를 가족·이웃과 함께 했습니다. 『성종실록』에는 “명절마다 둥근 뜰에 모여 윷판이 벌어지고, 아이들은 소고와 꾀꼬리 장난감으로 시합을 벌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달구경, 강강술래, 귀신쫓기 밤샘놀이, 서당 아이들 사이엔 팽이치기, 자치기, 글짓기 대회도 있었던 것으로 전합니다.
  • 일제강점기: 신문·잡지 공모전(격문놀이, 작문대회), 라디오 듣기, 심야 영화관 나들이, 재즈 카페, 사루비아 커피, 빙고게임(빙고·경마), 테니스와 육상·농구 등 서양 스포츠가 새로운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경향신문』 1935년 보도에는 “한양 청년들이 달밤에 소라껍질 불고 경마 내기를 하였다”는 실제 에피소드가 남아 있습니다.
“팔월 한가위 밤, 남녀노소가 마을 초입에서 줄다리기와 떡 나눠먹기로 흥을 채웠다.” – 『조선후기 민속기록』

4. 소비와 시장 – 사고파는 재미와 현실

  • 조선 후기: 평민들은 5일장(오일장)과 여러 상설 시장에서 생필품을 거래했습니다. 『허생전』과 『열하일기』에는 “종로, 남대문, 북문 시장에 쌀, 장작, 소금, 실, 구두, 간식까지 뭐든 거래했다”는 당시 장터 모습이 자세하게 등장했습니다. 19세기부터 포장마차, 술집, 주전부리 가판대가 늘었고, 시장통 음식(두부, 육개장, 찹쌀떡 등)이 서민 인기 ‘먹거리’였습니다.
  • 일제강점기: 미쓰코시 등 백화점, 쇼와상점 등 일본식 체인, 잡화상, 잡지구독, 화장품(미인삼, 메리화장) 등이 유행했습니다. 『매일신보』 1933년 “신여성들은 오히려 명동 백화점 세일날에 맞춰 머리 단장과 파마를 시전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포장마차와 분식집에서 ‘우동, 술빵, 오뎅’이 인기를 끌었고, 국산과 외제 브랜드가 동시에 시장에서 경쟁했습니다.

참고 자료: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동국세시기』, 『성종실록』, 『목민심서』, 『허생전』, 『한국민속대관』, 『한국현대생활사』, 『열하일기』, 『매일신보』, 『경성일보』, 『조선중앙일보』 등 신문·민속학·문학 자료를 꼼꼼히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