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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과 설렁탕 – 국밥 한 그릇이 만든 궁궐·노동의 풍경
1. 곰탕의 탄생 – 천 년 한우와 불의 시간
- 곰탕은 쇠고기, 내장, 뼈, 힘줄, 양지, 사태, 머릿고기까지 “설렁설렁”—모든 부위를 가마솥에 넣고 천천히 오래 고아낸 투명하면서 우유빛이 감도는 진한 국물입니다.
고구려 고분 벽화(무용총, 안악 3호분)에도 큰 솥 앞에서 소고기와 잡뼈를 넣고 끓이는 풍경이 남아 있습니다.
고려시대 국립박물관 발굴 자료에서도 대형 솥, 대형 국자, 뼈를 우린 국물 자국의 유물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궁중 진찬(進饌)의 백미” 중 하나가 도가니, 사골, 등뼈, 무, 파, 마늘, 소금 만으로 감칠맛·깊은 육향을 끌어내는 곰탕이었습니다.
- 곰탕 국물은 거무스름하게 맑으면서도 혀에 닿자마자 고소·짭짤·은근한 단맛이 올라오고, 밥알과 한 숟갈 떠먹으면 살살 녹는 지방, 묵직한 뼈 향이 입안에서 퍼집니다.
“국물 표면에 맺힌 투명한 기름띠와 뚝배기 내장, 부드러운 대파송송, 새하얀 소면 사리까지 한 번에 푸짐한 포만감이 온몸을 감쌉니다.”
지금 밥집 곰탕도 이런 기본을 훌륭히 이어받고 있습니다.
2. 설렁탕 – 왕도 노동자도 즐긴 한 그릇의 혁신
- 설렁탕은 설농탕(사골탕)과 곰탕의 경계에서 나온 국물로 “진한 우유빛, 끈적이고 깊은 맛, 소금·후추·다진 파와의 조화”가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조선시대 세종, 숙종왕대에 “중요한 행사와 왕실 제사 후에는 큰 가마솥에 온 소를 넣고 밥·국수·육수를 한 번에 나누었다”는 기록이 『경국대전』, 『의궤』, 『승정원일기』 등에 남아 있습니다. - 설렁탕은 국물의 농도를 위해 사골뼈, 정강이, 양지 내장, 끝부분 근막과 척골, 심지어 쇠꼬리뼈까지 고아 국밥 고유의 “곱창질, 탱탱한 힘줄, 고소함”을 슬쩍 녹인 국물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노동자·농민·관청 호장까지 누구나 나무숟가락, 밥 한 덩이, 무채 김치 한 접시와 함께 설렁탕 뚝배기 한 그릇을 나눴다”고 여러 민속기록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 현대의 설렁탕은 곰탕에 비해 사골비율이 높고 유백색을 띠며, 파, 후추, 당면, 깍두기 등 반찬이 다양해졌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3. 국밥 한 그릇이 만든 풍경 – 왕, 장인, 농민의 진짜 이야기
- 세종의 국밥 한 그릇:
『세종실록』에는 세종이 정월 보름 명절, 밥상에 “진하게 끓인 곰탕 국밥 한 그릇에 대파를 가득 얹고, 신하, 궁녀, 호위병 모두에게 국물과 밥을 나눠 주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국밥 한 그릇이 왕권과 친밀감, 민심까지 모두 엮는 큰 음식이었습니다.
- 농부와 곰탕, 백성들의 힘:
고려·조선 농사꾼들은 봄·가을, 논밭에서 집단 노동할 때 “넓은 들판 한가운데 아낙이 커다란 솥을 들고 와 국밥·곰탕을 먹이며, 땀에 젖은 밥그릇에서 힘이 솟는다”고 회상했습니다.
뼈국은 그 자체로 ‘단백질 보충제, 피로 회복, 가족 건강 식단’이었고, 전국 방방곡곡 집집마다 제사·명절엔 큰 솥이 필수였습니다.
- 시장, 역, 공중목욕탕 곰탕집 풍경:
조선 후기 한양, 1960~80년대 서울, 전국 오일장 풍경에서는 “시장에서 일하는 부지런한 사람들, 큰 행사 뒤 목욕탕 주인이 뽀얀 설렁탕 한 그릇, 매콤 깍두기 또는 쪽파 송송 얹어 한 잔 땀을 식힌다.”는 에피소드가 많았습니다.
양반과 평민 사이, 권력자와 소상인 모두가 “국밥 한 그릇에선 똑같이 숭늉 한 모금까지 퍼먹었다”는 기록도 여러 민속조사에 남아 있습니다.
- 영화·드라마 속 국밥/설렁탕:
현대 드라마, 소설, 문화에서도 “국밥집에서 어깨를 맞대며 대화하거나, 힘든 하루 끝 국물 한 숟가락을 떠먹는 장면”이 빠지지 않습니다.
노동자, 토론장, 경찰, 작가, 정치인, 각양각색의 인물이 국밥 한 그릇에 쌓인 땀과 눈물을 녹였습니다.
“국밥 한 그릇, 설렁탕 한 모금에 겨울 추위도, 세상 눈물도, 하루 피로도 모두 녹여버릴 수 있습니다.”
– 한국민속조사 구술
4. 현재 우리가 먹는 곰탕·설렁탕과의 차이
- 과거와 현재의 곰탕/설렁탕 차이점:
고전 곰탕은 내장/힘줄/머릿고기를 섞어 맑고 진한 맛, 현대 곰탕은 잡뼈·내장 비율을 줄이고, 식용유·조미료로 더욱 맑은 맛에 집중합니다.
설렁탕의 유백색은 사골과 뼈의 고온 장시간 우림에서 나오는 것이고, 오늘의 설렁탕은 뼈·고기를 많이 쓰지만 과거에 비해 잡뼈·도축 부산물의 쓰임이 적어졌다는 점이 다릅니다.
- 반찬과 토핑의 변화:
조선 시대엔 국물+밥+조금의 김치, 소금 정도였으나 지금은 깍두기, 파, 후추, 마늘, 당면, 소면, 심지어 각종 고추가루, 들깨가루, 뼈해장국의 식초까지 다양한 반찬·토핑이 곁들여지는 점이 특징입니다.
- 현대적인 팩트 체크:
곰탕/설렁탕의 구별, 국물 색깔과 재료, 사골 진탕/잡탕/뼈육수 우림법, 재료 처리 등은 『동국세시기』『조선왕조실록』『조선의 맛과 멋』, 국립민속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한식재단 자료, 신문·문학 기록 등을 참고해 재현가능성이 높은 방법만 반영했습니다.
- 세계의 유사 음식과의 비교:
곰탕·설렁탕은 동아시아 고기국물 요리(스키야키, 베트남 쌀국수, 몽골 국물 등)와 닮았으나 내장, 우려내는 시간, 국물 조합법에서 조선·현대 한식만의 특성이 훨씬 뚜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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