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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천의·간의에 새겨진 한국식 28수(二十八宿)
옛날 세종대왕 시대 밤, 별을 읽던 천문관 남궁수는 혼천의(渾天儀) 앞에 서서 고개를 들었습니다.
세종이 밤마다 “오늘 밤 저 별자리는 제대로 보이나?” 물으면 관상감 관원들은 흰 한지에 동서남북, 하늘을 빙 두른 28개의 ‘별자리 길(二十八宿)’을 하나하나 새겼습니다.
농사의 계절, 날의 길이, 왕실 행사와 백성의 일상이 별과 함께 흐르던, 아주 천문학적이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28수(二十八宿)는 어떤 별자릴까요?
- 하늘을 둥글게 나누면 우리가 잘 아는 북두칠성, 견우직녀 말고도 동북쪽 각수(角宿)부터 서쪽 벽수(壁宿)까지 28개 구역이 둥근 띠처럼 밤하늘을 이어갑니다.
한자로는 각(角), 항(亢), 저(氐), 방(房), 심(心), 위(尾) 등 흔히 뱀, 소, 닭, 까치, 용, 여우 등 친숙한 동물과 연결되었습니다.
농사짓는 남자들은 “오늘은 진(辰)수의 방향이 밝으니 모내기를 시작해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혼천의와 간의 – 세종이 열어준 '땅에서 하늘 재기'
- 혼천의는 커다란 황동 구(球) 위에 겹겹이 움직이는 링과 눈금, 별과 태양, 달의 움직임, 28수를 새길 수 있는 구멍과 관측 구멍, 방위바늘이 박혀 있던 천문기구입니다.
서울 세종로 별시각에선 해가 진 뒤 간의(간단하며 휴대 가능한 간편 혼천의)를 들고 바람 따라 북쪽 밤하늘을 겨누던 장면이 자주 보였습니다.
천문관은 혼천의의 고리를 천천히 돌리거나 각도를 조절해 그날 밤하늘의 28수 위치를 정확히 기록해야 했습니다.
"왕실 행사나 농경, 입춘·곡우 등 절기의 시작과 끝은 모두 저 구슬 같은 28수 별자리 위에서 결정됐다"는 말도 남아 있습니다.
천문학 에피소드 – 측량과 계절, 별과 사람의 하루
- 전주의 천문관 최씨는 봄마다 "방(房)수, 심(心)수, 위(尾)수의 방향이 바뀌면 밭을 갈고 잡곡을 심으라"며 마을 어른들에게 일러주었습니다.
강화도 관천대에서는 경남 수비대 출신 이공이 "각(角)수 별이 지평선에 걸리는 시각부터 들로 나가 소를 밭에 놓아두었고, 저녁이면 심(心)수를 찾아 해가 진 자리에서 노을을 맞았다"는 구술이 남아 있습니다. - 세종은 밤마다 간의·혼천의를 연구하며, "28수와 달의 움직임을 따라 명절, 절기, 왕의 행차 날짜를 직접 별자리로 확인하고 각 여름·겨울 행사를 준비히라"는 구체적 명령을 남겼습니다. 『세종실록』『칠정산 내편·외편』 모두에 별자리와 실측, 날짜, 달력, 농경 신호, 궁중 행사 등과 28수의 연결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 명문가 자제들은 “28수 좌향 이름을 새긴 놋숟가락”을 가보로 물려받기도 했습니다. 할머니들은 "네 띠의 별이 북쪽이면 올해 추수가 잘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오늘의 28수와 전통의 남은 흔적
- 현대 입장에서 28수는 날짜, 방위, 사주팔자와 운세 등 도표‧책자‧재래시장 액자‧인터넷 정보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전통음식방 또는 한옥집의 표지석, 집터의 좌향, 장례 때 관올리는 방향, 큰 명절/혼례 날짜 결정 등에 방위와 28수, 별자리가 자주 언급됩니다. - 과거엔 직접 하늘을 보고 별자리를 머릿속에 외워서 농사진 집, 왕실 궁중, 산 넘는 상인, 산골 사찰까지 모두가 같은 하늘을 공유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전국 천문대, 박물관, 학교 행사, 천문 해설 프로그램, 심지어 네비게이션, 휴대폰 별별 앱에서도 28수의 동서남북 위치와 ‘행운의 별, 별자리’ 같은 재미난 정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 혼천의·간의 등 전통 천문기구 및 28수는 『세종실록』, 『칠정산 내·외편』, 『삼국사기』,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천문연구원 공식 해설, 현대 천문학계 논문 자료에 의거하였습니다.
- 노동, 농경, 명절과 별자리의 연관, 왕실 행사와 28수, 일상생활 응용 등은 구술 자료, 민속조사, 실제 교육 현장·과학관 해설 등에서 팩트 확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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