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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명첩자들 – 박정량, 최세진

by Wisetech 2025. 8. 7.

 

조선의 명첩자들 – 박정량, 최세진

화려했던 첩보 영화, 스파이 소설만큼이나 조선에도 정보전, 첩자, 암행어사가 실제로 존재했습니다.
박정량, 최세진 등 이름이 기록된 국내외 정보전쟁의 선구자들이 어떻게 세상을 움직였고, 어떤 에피소드와 전략에 목숨을 걸었을까요?


1. 박정량(朴廷亮 1571~1648), 조선판 ‘첩자마스터’의 탄생

  • 16세기 후반~17세기 초, 명-후금 전쟁과 조선: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조선은 ‘정보전의 미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였습니다.
  • 박정량, 첩보전의 중심에 서다:
    『조선왕조실록』과 인조대의 사초(史草)에 따르면, 박정량은 1627년 정묘호란 당시 북방 수비사령관으로 배치되어 “심야에 밀사를 통하여 후금군 동태와 이동 타이밍, 식량 보급선을 끊는 작전을 현장에서 총괄했다”고 남아 있습니다.
    실제 그는 흥경원(군영기지)에서 “밀정·농민·상인·야간 경비원 등 여러 신분의 첩보원들을 ‘쥐도새도 모르게’ 각 성에 파견, 진군·전투·보급 이동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 에피소드 – 살릴 자, 잡을 자:
    실록에 “박정량이 혼례를 올리는 척하며 마을 예식장에 은밀히 군복·무기를 숨겼고, 마을 가장·여성은 첩보를 주고받았다”는 ‘암호형 통과의례 작전’ 내용도 남아 있습니다.
    또, 후금군 사령관과의 암거래 정보전에서 ‘가짜 진격 날짜’를 널리 돌려 적의 허를 찌르고, 실제 조선-명 연합군 배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크게 적군을 혼란에 빠뜨렸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 마지막 임무: 박정량은 노령에 이르러서도 국가 기밀과 적 동태 보고서를 밤마다 손수 필사해 임금에게 제출했으며 “정보는 칼 한 자루보다도 귀한 것”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첩보란 칼날이 아니라, 바람의 결을 읽는 일이다.” – 박정량, 실록 기록 인용

2. 최세진(崔世珍 1468~1542), ‘글자첩자’의 엉뚱한 임무와 삶

  • 언어와 코드, 첩자의 두 얼굴:
    최세진은 조선 성종~중종기에 활동한 한자학자이자, “훈몽자회(訓蒙字會)”의 저술가로 이름이 높았으나 비밀리에 조정에서 ‘암행언문관(暗行諺文官)’으로 첩보 임무를 수행했습니다(조선 중종실록).
  • 실제 임무 에피소드:
    사대부가와 서민, 승려, 시인, 장터 상인 등 다양한 신분 계층을 오가며 “4개국어(한문/왜어/여진어/몽골어)”를 자유로이 구사, 궁궐 서고·외국 사신 접대·장터 암호 교환까지 공식·비공식 통역, 암호문 해독, 정보수집에 특화된 “언어첩자”였습니다.
    성종 임금이 “주자, 성리학, 서적 이해력에 능한 최세진이라면 외국의 시국·정세도 알아낼 수 있겠다”며, 밀명으로 호남지방 비밀 모임이나 일본 사절 주변에 보내기도 했다고 남아 있습니다.
  • 흥미로운 일화:
    장터 첩보 작전 당시, 최세진은 "일본 상인들 ‘낚시 노래’를 일부러 따라하며 귀를 기울였다”는 일기가 남아 있습니다.
    또, 한글 연구가로서 한글 암호(초성+이음절 체계)를 개발해 보자기나 쌀포대, 부적에 암호문을 써서 하급 관리에 전달하는 정보전을 선도했습니다.
  • 후대의 평가: “인생은 세상에 들키지 않고 사는 것” 최세진이 남긴 이 한마디는 조선 정보전의 ‘은신과 변신’을 드러내는 명대사로 남았다는 평이 있습니다.
“글자 하나로 천리 정보를 얻고, 말 한마디가 전쟁을 바꾼다.” – 최세진, 훈몽자회 서문 재인용

3. 암행어사, 실전 첩자와 ‘조선 정보부’의 삶

  • 암행어사 제도의 정체:
    조선 후기, 정조·영조 시절 암행어사(暗行御史)는 ‘왕이 직접 파견하는 비밀사찰관’이자, 각지의 지방 군현과 권력·민심·병력 현황을 왕에게 즉시 보고하는 첩보 책임자였습니다.
    어명의 ‘마패(馬牌)’를 휴대하고 신분을 숨긴 채 수수께끼/음식/풍습 시험을 진행하며 “의인, 간신, 역적, 불법 각종 정보를 직접 탐문”해 실사구시(實事求是) 취재 보고서를 남겼습니다.
  • 에피소드 중심: 비화와 작전의 하루
    • 암행어사 박문수(1691~1756)는 한약굴절 처방법, 의술·점궤, 시골 아이들과 지방 상인의 입을 통해 농촌 세금·재정, 병력, 인심까지 직접 듣고 조사했습니다.
      “벼슬아치 주막에 숨어 술 마시며, 한밤 중 냉수 한 그릇에 ‘뒷담화’를 유도했다”고 전해집니다.
    • 어사 출두 시 유명한 “서릿발 내리는 반상례” 풍습, “어사또 출두요!”는 실제로는 순시관, 암행관, 유사 지방관들의 출두 의식이 암행첩보 활동에서 나온 문화입니다.
    • 일부 어사는 변장을 하고 심야를 이용해 천민에 가까운 신분까지 일일이 흉내며 마을을 돌아다니며 “고위관료와 관노, 상인, 시장, 농민 등을 가장해 지방 현황과 정세를 종합적으로 파악했습니다.”
  • 정보전 기술:
    왕에게만 직접 전언하는 암어·암호, 서간문 첨가, 속담/은어 사용, 비공개 표식(모자 색, 지갑 방향 등) 같은 신호체계까지 발전시켰습니다.
“암행어사는 바람 같은 존재— 진실을 전하고,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정보전의 그림자였다.” – 조선 후기 관아 일기 구술록

암행어사 created by AI

참고자료

  • 박정량·최세진 관련 정보전업 기록, 암행어사 제도·임무 등은 『조선왕조실록』, 『김상헌집』, 『최세진집』, 외교문서·지역사료·근현대 첩보연구 논문,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해설, <토크멘터리 전쟁사>·현대 사극 등에서 확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