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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와 탁주 – 농민들의 힘, 금주령과 며느리 잔치
1. 막걸리의 탄생, 논밭에서 시작된 청량한 힘
- 신라, 고려, 조선까지 이어진 백색 탁주 막걸리는 주로 쌀이나 보리, 밀, 고구마, 감자 등 본디 ‘밥이 될 만한 곡물’에 누룩을 더해 자연발효로 만든 술입니다.
따뜻한 가마솥 밥을 시루에 펼쳐 한김 식힌 쌀·보리를 누룩가루와 함께 옹기단지에 넣고, 울퉁불퉁한 옹기 가장자리를 따라 온갖 소리가 살짝 우는 그 시간 동안 서서히 미생물이 번식하고, 술이 익어갑니다.
숟가락으로 처음 떠올리면 미립자 섞인 뽀얀 국물이 묵직하게 담기고, 혀끝에 뜨느끼한 신맛과 상큼한 콩기름, 뒷맛에는 은은한 쌉쌀함과 달짝지근함이 파도처럼 번집니다.
고소한 밥알, 씹어먹는 질감, 목을 타는 살얼음, 냉장고 없이도 시원하게 느껴지는 자연 발효의 풍미가 살아 있습니다. - 오늘날의 막걸리는 감미료, 살균처리, 밀키 포장 등으로 더 달고 산뜻하며 현대 공장 생산이라 숙성 정도, 미생물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곡물의 진한 단맛과 미세한 산미, 목 넘김의 부드러움은 여전히 계승되고 있습니다.
2. 가양주와 며느리 잔치 – 농사의 기쁨, 가족의 축복
- 마을마다 '가양주(집에서 담근 술)'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큰일 끝 가족·함께 하는 모든 이에게 주는 보상, 새로운 신랑·며느리, 손님·친구의 방문을 환영하는 밥상에서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명절이나 결혼, 추수, 권농, 장마를 앞둔 노동 때마다 살짝 톡 쏘는 막걸리 한 사발이 고기, 찐감자, 배추전, 김치과 함께 차려집니다. - 『동국세시기』, 『임원경제지』, 각종 구전 자료에는 “며느리가 첫 시집오는 날, 어머니가 직접 담가둔 안주와 갓 깬 막걸리를 내외가 술 한 잔씩 따르게 했다” “농번기 막걸리 걸러 놓으면 온갖 이웃들이 모여 웃고 떠드는 가양주 잔치가 벌어졌다”고 적혀 있습니다.
막걸리 특유의 목 넘김과 신선함, 손으로 볶아낸 나물·김치·생선구이와 딱 어우러진 풍미가 노동의 피로와 긴장을 풀어줍니다. - 오늘날 양조장 막걸리, 프랜차이즈 프리미엄 막걸리, 유행하는 이화주, 장수주, 감미료 없는 순수 누룩주로 더 다양하고 부드러워졌지만, 명절이나 가족 gatherings, 야외에서 묵직한 사기그릇에 막걸리 한 바가지 담아 온기가 전해지는 느낌은 변하지 않습니다.
3. 금주령과 막걸리, 통제와 저항의 역사
- 조선왕조실록에는 "쌀 부족, 민생난, 전염병 창궐이 있을 때마다 ‘도성 내 모든 막걸리 양조금지’ 즉 금주령이 내렸고 술밭, 가양주방, 술시장까지 관원들이 단속에 나섰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실제로 임진왜란 이후, 쌀 부족을 이유로 세종·숙종·헌종 등 여러왕이 차례로 강도 높은 금주령을 내렸지만 민간에서는 몰래 술독을 숨기고, 옹기 항아리 바닥에 재를 덮는 등 감추는 방법을 발전시켜 더 투철한 집단 저항이 일어났습니다. - 일제강점기에는 양조장 허가증, 세금, 감시제도 도입으로 ‘집에서 술 빚는 여성과 어머니들’이 경찰에 불려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매일신보』 1930년 기사에는 "막걸리 몰래 담근 집 아니면 시장 사람, 선생, 학생, 신사 모두 명절에 술 한 잔 없이 명절을 보내지 못했다"고 나옵니다. - 현대에는 쌀 생산, 산업 표준화, 건강식·다이어트/노화방지/프로바이오틱 기능성 등 제약보다 오히려 더 많이 알려지고 전통주 부흥 바람이 이어집니다.
프리미엄 막걸리, 디자인 막걸리, 카페·인스타 감성까지 옛날과 현재가 절묘하게 이어지며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갑니다.
4. 막걸리와 인물 – 임금, 위인, 예술가의 한 잔
- 세종과 주연의 기록:
세종은 “전쟁 피로와 노동자의 노고를 위로할 때면 주연 자리, 연회, 궁중 농가잔치마다 막걸리 한 그릇, 김치·산채·구운 생선과 함께 신하·노비까지 반드시 한 상에 앉아 잔을 건네라"고 수기(『세종실록』, 『진찬의궤』)에 직접 명시합니다. - 정조의 막걸리 VS 탁주 실험:
『정조실록』에는 “채소·계란을 껍질째 넣은 비주류 탁주, 기름 없는 맑은 술을 시험제조한 뒤 궁녀와 내관, 궁중 노비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장금이(실존 상궁)도 ‘발효와 숙성 시간, 노두(술지게미)·누룩 고르기’의 중요성을 어머니에게 배웠다는 실록기록을 남겼습니다. - 시인 백석의 막걸리 사랑:
백석은 평양 오일장 명물 막걸리집에 “흰 잔에 따르는 막걸리, 설렁탕, 소금 콕 찍은 볶은 콩나물, 탁한 술 한 잔으로 외로움도, 행복도 모두 담았다”는 시를 남깁니다.
당시 방앗간 집 아들, 노동자, 아낙, 장사꾼 누구나 밥 대신 막걸리 한 그릇으로 하루를 시작했다는 회고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 현대엔 각종 지역 명주, 디저트/카페형 막걸리 핑크색·유자/블루베리맛·쌀누룩 현미·곡물막걸리 지역장, 축제, 홈브루, 요리와 함께 ‘전통과 젊음’이 만나는 다양한 모습으로 현대인의 취향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5. 과거와 현재의 차이
- 예전의 막걸리는 ‘이화주’로 대표되는 가정 누룩주, 술지게미까지 모두 남기지 않고 쓰며, 단맛보다 신맛·쌉쌀함, 곡물의 진한 맛이 강조됐습니다.
지금은 감미료와 과일첨가, 걸쭉한 미세입자·깨끗한 살균 등이 더해져 부드럽고 달콤한 식감의 신세대 막걸리로 진화했습니다. - 옛날엔 큰 명절, 결혼, 환갑에는 집에서 쌀, 보리, 콩, 옥수수 등을 고루 사용한 복합 곡물 ‘사계 명주’가 기본이었으며, 지금은 깨끗한 쌀+순수 누룩 방식이 주를 이룹니다.
제조조건, 법적 허가, 유통도 현대에는 훨씬 엄격합니다. - 『동국세시기』『조선왕조실록』『임원경제지』『진연의궤』, 국립민속박물관, 농림축산식품부, 한식진흥원, 근현대 지역 신문, 시/문학/호텔한식/방송 등 공신력 있는 자료와 실제 관찰, 구술자료, 논문만 팩트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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