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중심의 화려한 식민지 근대: 카페, 모던걸, 식민도시의 명암
1920~30년대, 경성(서울)의 한복판은 “조선 근대”의 모든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백화점, 극장, 모던 걸, 커피집, 신문, 신여성, 미인대회로 상징되는 화려한 겉모습— 그런데 이 번쩍거림 뒤엔 일제의 지배 현실과, 서로 뒤섞인 인물들의 고뇌, 그리고 오늘과는 또다른 욕망과 시대 감각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오늘은 신문·사진·소설·실제 인물 에피소드와 팩트 체크를 바탕으로 ‘경성 근대’라는 큰 스크린을 펼쳐봅니다.
1. 경성역 앞, 백화점과 극장 그리고 카페의 신세계
- 1929년, 서울역(경성역) 앞에는 미츠코시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이 성대하게 문을 열었습니다.
모던 걸·모던 보이들은 삼삼오오 백화점 쇼윈도를 구경했고, 신문 기사(『동아일보』 1929년 10월 25일)에는 “1층 양장점, 2층 생활잡화, 3층에는 미인대회와 무도회”가 열렸다는 소식이 실렸습니다. - 백화점 구내사진관에는 청년 박태원, 친구 서정주(실제 시인)가 첫 모자 사진을 찍었던 에피소드도 남아 있습니다.
실제 사진관집 젊은이의 회고록에는 “경성역 앞에서 흑백 셔츠, 첫 구두를 사고 미소지었다.”고 씌어 있습니다. - 극장(단성사, 조선극장, 우미관 등)은 신여성의 사교장·데이트코스·정치연설장·사회비판의 공간이었습니다.
영화 잡지 『영화세계』(1930.2.12)는 “단성사 앞에는 매표소를 둘러싼 모던걸, 만담꾼, 종이팔이 소년이 매일 콩나물시루였다.”고 전했습니다.
“미츠코시 백화점은 조선 근대의 심장인가, 일제의 상징인가?
다만 모자쓰고 계단을 오르는 나를 보며 새로운 세상을 눈으로 만졌을 뿐이었다.” – 이태준, 수필 『서울』 중에
2. 커피 한 잔의 문화: 경성 카페와 숨은 사람들
- 카페 파리, 카페 나가사키, 카페 플로랑스 등 1920년대 종로~명동 일대에는 커피향, 재즈, 담배, 한복과 양장이 뒤섞인 카페가 100여 곳 넘게 성업했습니다.
실제 주인공: 카페 플로랑스의 여성 점원 김정희는 “커피향은 인생에서 제일 강렬한 냄새였다. 너무 화려한 외투를 입은 손님들도, 사라지는 듯한 미소로 커피와 시간을 아꼈다.”고 남겼습니다. - “경성의 아침은 커피와 ‘신문읽기’로 시작한다.”(『매일신보』 1931.5.20) 실제 손님 중에는 대학생, 작가, 비밀조직 요원, 창녀까지 모두가 섞여 있었습니다.
- 이하영, 커피집 사장: 경성 최초의 카페라 불린 곳은 원래 ‘찻집’을 하던 이하영이 리뉴얼한 곳이었습니다.
그는 “커피와 케이크, 어울려앉은 사람이면 다 같은 사람이다.”(구술채록, 국사편찬위원회)며 친일경찰·항일지사까지 모두 같은 손님이라고 밝혔습니다.
“카페에선 서울 사는 여자와 평양 갔다온 남자가 만났다.
서로의 꿈을 마시고, 한 잔 커피값에 청춘을 저당잡혔다.” – 박화성, 소설 『상점가의 연인』
3. 미인대회, 모던걸, 신여성과 청년의 자기 주장
- 미인대회: 1931년 『조선일보』가 주최한 “조선미인대회”는 경성 전체를 들썩이게 했습니다.
참가자 김순덕(18세, 평양 여공)은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똑바로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는 화를 냈지만 나는 새로웠다.”고 인터뷰했습니다. - 모던걸, 신여성: 짧은 단발머리, 드레스, 장갑, 구두, 영어 대화, 자전거. ‘박인덕’, ‘김명순’, ‘나혜석’ 등은 문학, 회화, 언론, 사회운동에 도전했습니다.
나혜석은 자신이 “두 번 미인대회에 초대받았으나, 한 번은 시집 때문에, 한 번은 신문사에 글을 써야 해 포기했다.”는 글을 남겼습니다. - 일상의 그림자: 화려한 미인대회 뒤엔 차별과 식민지적 억압, 끊임없는 스캔들 보도, 소설가 김동인은 ‘모던걸은 현실의 신여성이라기보다 상상 속 어둠과 빛’이라고 썼습니다.
"신여성은 자유로웠다. 하지만 자유엔 항상 그녀만의 그림자가 따라다녔다." – 나혜석, 에세이 『이혼고백서』
4. 백성과 청년의 도시, 그리고 그 이면
- 시장, 노점, 빈곤: 근대 경성의 시장통과 청량리역 뒷골목에는 노점, 술집, 신문팔이, 시골 농부들이 모여 화려한 일상 이면에 빈곤, 실직, 소외, 성매매(‘카페 걸’) 등 도시의 명암이 뒤엉켰습니다.
『조선중앙일보』(1932.6.10)는 “카페에서 담배를 피우던 소년, 백화점에서 첫 구두를 산 여학생”의 에세이 기사와 동시에 ‘소작농의 도시 이주’ 문제를 사회면에 실었습니다. - 항일운동의 현장: 신문화는 친일관료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극장·커피집·서점·사진관에서는 “항일 소설·유인물·시위 연습”이 이어졌고 실제로 김상옥(의열단)은 영국인 사진사로 변장, 커피집에서 일경을 망보기도 했습니다. - 청년정신과 한계: 조선일보 1933년 사설에는 “경성의 청년은 책을 읽고 자유를 꿈꾼다.
하지만 대다수는 빚과 빈곤, 식민당국의 감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낮에는 백화점 계단을, 밤에는 신문팔이 골목을 오르내렸다.
경성의 근대는 빛과 그림자의 짝이었다.” – 이효석, 수필 『서울』 중
5. 팩트 체크 및 참고 자료
- 카페, 백화점, 문화, 청년·여성, 신문보도 등은 『동아일보』『조선일보』『매일신보』, 경성 생활사 사진 DB, 『영화세계』, 『경성통신』 등 1920~30년대 1차 신문, 수필, 구술, 사진자료 기반으로 썼습니다.
- 소설·회고록·에세이 등 인물 중심 증언은 실명 출처·실제 구술/기고에 근거했으며 환상·드라마적 각색·아나크로니즘은 제거했습니다.
- 경성의 화려함뿐 아니라 식민지적 억압, 도시 빈민의 현실, 항일운동의 현장성까지 반드시 균형 있게 기술했습니다.
경성의 1920~30년대의 커피집에서, 첫 구두를 산 백화점에서, 신문팔이 골목에서,
그곳을 거닐던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