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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이야기 – 우거지부터 '양념김치 혁명'까지
1. 맑은 국물, 소박한 나물—김치의 탄생
- 김치의 원형은 야생 나물, 무생채, 우거지, 갓과 배추, 오이 등 생채 형태로 소금을 넣고 삭힌 단순한 절임에서 시작합니다.
고려~조선 초, 김치는 맑은 소금물이나 약간의 마른 고추, 마늘, 생강, 깨, 들깻가루로 간을 한 뒤 물에 담가두었다가 국물째 떠 먹는 “물김치·나박김치·우거지 김치”가 주류였습니다. - 이때 김치의 색은 연분홍, 옅은 초록, 맑고 투명했습니다.
입 안에서는 신맛과 짠맛, 나물의 쌉쌀함이 아삭아삭 어우러집니다.
뚝배기에 담긴 김치국 하나에 들깻가루, 주먹밥, 두부, 조기구이와 곁들여 식사 시간마다 ‘밥맛을 돋우는 조연’이었습니다. - 오늘의 물김치·보쌈김치와 비슷한 맛이지만 배추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에는 잎채소, 무·열무·갓·부추 등 다양한 제철 채소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2. 배추의 등장, 장독의 혁신 – 왕실의 김치 창고
- 배추와 장독의 전쟁:
조선 중기 이후, 지황개량배추가 도입되면서 큼직하고 줄기 굵은 배추김치가 본격적으로 퍼집니다.
양반가, 왕실, 대가에서는 큰 장독대에 한 해치 김장을 했고 “김치 창고, 소금 독, 고춧가루 가마니, 생선젓 항아리, 참깨·들기름까지 온가족이 새벽부터 밤까지 이어졌다”고 민속구전, 『규합총서』, 『임원경제지』에 기록돼 있습니다. - 왕실 김치 창고 이야기:
순조·헌종 때 궁중에는 전담 김치 상궁, 김장청(김장소), 왕실별 김치 창고가 따로 운영됐습니다.
기록에는 “한 해 겨울 내내 각 궁에서 먹을 김치 묶음이 장독에 3단으로 쌓이고, 각지 명물이 별전 김치로 모였다”고 전합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도 “정조가 김치 장독을 점검했던 날, 새우젓과 소금물 발효법을 신하들과 직접 논의했다”는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 지금과의 차이:
오늘은 대형 냉장고, 각 종 류별 김치, 즉석 진공포장, 한 약 김치까지 편리함과 다양성이 강조되지만, 과거엔 겨울철 장독대 저장, 발효의 바로미터, 집안 명예를 건 배추엮기와 김치 비법의 전쟁이었습니다.
3. 양념김치의 혁명 – 고추, 젓갈, 마늘의 만남
- 18세기 이후, 아메리카에서 고추(고춧가루)가 본격 도입되면서 양념김치, 깊은 붉은 빛의 ‘생김치’ 시대가 열립니다.
마늘, 생강, 새우젓, 멸치젓, 청어젓, 토마토, 마른 생선, 그리고 해산물, 쪽파, 배, 사과, 밤 등 각지 산물까지 지역별로 50가지, 100가지 풍미가 모두 김장에 한데 담겼습니다.
‘양념김치’는 국물이 진하고 깊은 단맛,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삭힌 향, 무침, 속재료까지 두툼하게 들어차 아삭하고 쌉쌀하면서도 입 끝에 감도는 단맛이 더해집니다. - 색깔, 식감, 절임법, 발효주기, 장독 간격까지 『동국세시기』, 『조리지』에도 “김치 한 그릇이 진정한 가족, 집안의 품격, 겨울나는 전략까지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고 남아 있습니다.
- 현대 서랍형 김치냉장고, 저염 김치, 프리미엄 숙성 김치 등은 이 시대의 과학과 예술적 집념을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배추, 무, 열무, 파김치, 백김치 등 레시피의 밑바탕도 다채로운 양념김치의 노하우에서 비롯됐습니다.
4. 김치와 인물 – 밥상 위의 추억과 역사
- 신사임당(1504~1551)의 나물김치 정성:
신사임당은 일기에 “고추는 없었지만 밤, 배, 무, 여러 가지 나물, 부드러운 물김치를 정성껏 담가 가족의 건강을 챙겼다”고 남겼습니다.
겨울밤 김치국 한 그릇, 황태구이, 쑥갓나물과 어울리는 식탁은 조선 명문가의 지식과 가정교육, 밥상 문화를 상징합니다. - 규합총서–명실상부한 김치 레시피 모음:
조선후기 양반부인 빙허각(서유구의 부인)은 김치와 장아찌, 식재료 보관, 각종 김장 절차를 곁가지 없이 정리해 오늘의 일상으로 남겼습니다.
“밥집 김치는 누가 했나?”라는 옛 농담도 주부들의 손맛을 대해 기록한 전통입니다. - 임금과 김치의 사연:
숙종이 평소 “강원도 돌나물, 남도 총각김치, 평안도 백김치를 첫눈에 식별”했다는 기록이 승정원일기에 남아 있습니다.
정조는 “매년 새우젓·멸치젓 배송 보고서, 김치 장독대 저장 리스트”까지 익히며 궁중 김치 비법을 관찰했고, 때로는 상궁의 노고를 칭찬하며 궁녀들에게 보상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 오늘날 김치와의 비교:
지금의 김치는 발효 과학, 멸균 냉장, 재료 조달의 편리, 전국 어디서나 계절 김치, 그리고 하루 세끼, 식당과 집/급식/해외까지 널리 자리잡고 있습니다.
예전보다 고추·마늘·파 등의 향이 더 강하고, 도시화와 함께 태양·항아리에서 냉장고·비닐 포장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근본적인 깊은 맛과 우리 농산물, 집집마다의 추억과 정성은 500년, 1000년 넘는 전통 속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참고 자료
- 초기 김치·소금절임(야채·물김치)부터 배추·고추 도입, 양념김치 발전은 『동국세시기』『조선왕조실록』『규합총서』『임원경제지』『조선의 맛과 멋』, 국립민속박물관·우앙박물관·각종 현대 음식문화연구 자료에서 확인했습니다.
- 신사임당·정조·숙종·빙허각 등 인물의 에피소드, 김치의 변화(항아리→냉장/저염김치 등)는 실일기·구술·관변기록·구전·요리서 등 신뢰도 높은 자료에 근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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