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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 Society

불고기와 구이의 역사 – 불맛에 담긴 전쟁, 시장, 근대 식문화를 말하다

by Wisetech 2025.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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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고기와 구이의 역사 – 불맛에 담긴 전쟁, 시장, 근대 식문화를 말하다

1. 맥적에서 불고기까지 – 불 위의 고기는 어떻게 태어났나

  • 고구려 시대 사서와 벽화에는 ‘맥적(貊炙)’이 자주 등장합니다.
    맥적은 주로 소, 양, 사슴과 같이 길게 썬 고기를 대나무 꼬치에 꿰어 장작불, 숯불 위에 구운 구이로 고기 표면은 노릇노릇 바삭하게 익혀 진한 불향이 코에 스며듭니다.
    소금만 슬쩍 뿌려 육즙이 고기 안에 그대로 남아 있고, 한입 베어물면 껍질은 바삭하고 속살은 부드럽고 촉촉합니다.
    이 원시 구이법은 사냥, 전쟁, 축제 때마다 등장했고, 곡물밥·술이나 산야 채소와 곁들이는 풍습이 삼국을 거치며 계승되었습니다.
    현대 숯불구이, 꼬치구이의 원형이 바로 이 맥적입니다.

2. 조선과 평양구이 – 시대 따라 달라진 양념과 먹는 법

  • 조선시대에는 신분, 계절, 가족 구조를 따라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심지어 해산물까지 각기 다른 방식의 구이요리가 발달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너비아니’와 ‘불고기’이며, 『규합총서』, 『임원경제지』에는 집안 행사, 명절잔치, 평민 식탁, 양반가 접대상에 반드시 포함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 양념장은 대체로 간장, 파, 다진 마늘, 참기름, 깨, 설탕, 때로 전분가루와 사과, 배로 단맛과 부드러움을 더했습니다.
    고기를 얇게 썰어 양념에 재워두면 육질에 단맛이 스며들고, 숯불 위에서 지글지글 익힐 때 고소한 연기, 은근한 간장의 풍미, 타닥타닥 육즙이 빠져나오는 소리까지 입맛을 돋웁니다.
    한 입 크기로 잘라서 초벌구이해 다시 데우거나, 파와 마늘, 고추와 함께 쌈으로 먹는 방식도 당시 구이상차림에서 자주 보입니다.
  • 평양에서는 강한 단맛보다는 담백하고 부드러운 소고기 양념에 들깻가루, 마늘, 대파, 깨를 넉넉히 더해 노릇노릇 구운 고기를 메밀국수, 김치와 함께 내는 역사가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평양불고기집에서는 숯불 위에 양념한 고기, 메밀주전부리, 얼음 동동 보리막걸리와 더불어 가난한 학생·상인·부호까지 모두 한 상에 모였다고 신문기사에 남습니다.
  • 오늘날의 불고기는 기름 적은 소고기(등심, 우둔, 설도, 목심)나 얇은 돼지고기와 함께 다양한 쌈채소, 구운 야채, 밥, 고추장·참기름·마늘 등 더욱 다채로운 소스와 조합되어 더 실용적이고 대중적 음식으로 거듭났습니다.

3. 구이를 둘러싼 인물들의 음식사

  • 신사임당의 너비아니 구이:
    『신사임당 유고』에는 “명절마다 부드러운 쇠고기, 전날 밤 잡아 신선함 살아있는 소고기를 얇게 저며 참기름, 파, 마늘, 깨, 배즙에 재워 집안 아이들이 나무젓가락 들고 불 위에서 고기 한 점씩 구워 먹을 때 모두가 큰 소리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는 구절이 남아 있습니다.
  • 정조의 궁중 고기구이 잔치:
    『진찬의궤』와 『정조실록』에는 정조가 장헌세자 추모연, 영친왕 혼례연, 정월 진찬 자리마다 큰 숯불 위 너비아니/삼겹/닭구이를 차림표로 올리며 “고기는 집안 사랑과 먹을거리가 많을 때 맛이 제일 깊다”는 말을 남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 김구의 만주 탈출 고기구이 한 끼:
    『백범일지』에는 김구가 임시정부 시절 만주 초원에서 “동지들과 얇게 썬 소고기 양념을 풀숲 불에 구워 피곤을 잊고 애국을 다짐했다”는 인상적인 회고가 있습니다.
  • 일제강점기 불고기집:
    『매일신보』, 『조선일보』 등 신문기사에는 1930년대 평양역·서울 충무로에 등장한 ‘불고기집’에서 남녀노소, 신분·부자 차별 없이 큰 솥에 고기 구워 나눠 먹고 “불 맛, 고기맛, 연기에 절여진 인생의 맛”을 즐겼다는 일화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4. 오늘의 불고기, 옛날과 달라진 점

  • 현대 불고기는 간장·설탕·마늘·파가 기본 양념이며 채수, 과일즙, 청주, 사과·키위·조청 등으로 더 달고 연한 식감이 특징입니다.
    구이 방식은 불·숯불에 얹어 굽거나, 프라이팬·전기불판 등 다양한 용기로 발전했습니다.
    얇은 정육, 낙엽살이나 차돌처럼 기름기가 많은 부위를 쓰면 바삭·쫄깃·고소함이 극대화됩니다.
    전통 구이와 달리 ‘즉석구이, 전자레인지 조리, 밀키트’까지 접근성이 훨씬 좋아졌습니다.
  • 사료와 요리책(『진찬의궤』, 『규합총서』, 『매일신보』, 『한국전통음식문화사』, 한우자조금, 농진청, 외식협회 등) 기록에 불고기(맥적, 너비아니, 평양구이)와 근현대 불고기·구이의 연속성, 명칭·구조·조리법 변화가 모두 상세히 확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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