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근대 올림픽과 한국사: 손기정, 남승룡, 그리고 다시 이어진 도전
올림픽이란 단어가 한국인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1936년 베를린 대회가 계기였습니다.
그 현장에 간 두 명의 청년, 그리고 그 소식을 가슴 졸이며 기다린 수많은 조선인.
독립국이 아니던 조선 청년들의 첫 근대 올림픽은 수많은 인간적 이야기와 시대의 숨결을 남겼습니다.
1. 1936 베를린, 국적 없는 마라톤을 뛴 사람들
-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 손기정(1912~2002), 남승룡(1912~2001) 두 명의 조선 청년이 "일본 국적 일본 대표"로 출전했습니다. 일장기 유니폼을 입었지만, 경기 전 현지 신문들과 통역들에게 자신은 "조선 사람"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 마라톤 결승선에서 손기정은 2시간 29분 19초로 세계신기록과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인터뷰에서 "나는 조선 사람 손기정이다. 가슴에는 일본 왕국의 일장기를 달고 있지만, 마음에는 조선이 새겨져 있다"고 말했습니다(동아일보, 손기정 자서전, IOC 공식 기록 참조). - 남승룡은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나라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 선수는 눈물을 삼키며 손 기정 곁에서 국가(國歌) 대신에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봤다"고 후일 회고했습니다(나의 마라톤 인생).
- 동아일보 일장기 삭제 사건: 귀국한 직후, 동아일보는 손기정이 훈장받는 사진의 일장기 부분을 지운 채 1면에 실었습니다. 조선인들은 환호했고, 일본 당국은 신문 발행을 중지시키고 간부들을 투옥·징계했습니다. (동아일보 1936.8.25, 국립중앙도서관 신문자료)
“나는 내 나라 태극기를 달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조선의 이름을 외웠다.”
– 손기정, 『손기정 자서전』
2. 전국을 울린 소식, 신문과 가족, 그리고 아이들의 반응
- 1936년 8월 10일, 서울·평양·전주·부산까지 곳곳에서 라디오와 신문을 통해 손기정·남승룡의 금·동메달 소식이 퍼졌습니다.
『동아일보』『조선중앙일보』에는 “중학교에 교사·학생들이 도시락을 싸들고 함께 모여 조선인이 세계를 이겼다는 보도를 들었다”는 실제 교장, 학생 구술이 있습니다. - 부모들은 “이제 우리도 세계와 경쟁할 수 있다”며, 집마다 작은 축하 잔치가 열렸고 어린이들은 “장난감 달리기, 손기정 흉내 내기”에 몰두하며 각자의 우상으로 삼았습니다(삼천리 1936년 8월호).
- 또 조선 학교 교사 이선영의 일기에는 “아이들이 손기정 소식에 반 아이가 모두 울고, 뒤풀이로 도시락 반찬을 모두 나눠 먹었다”고 남겼습니다.
“손기정이 달리고, 우리 모두가 종로에서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날 밤은 온 동네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 서울시민 구술, 근대 구술채록집
3. 선수들의 본심과 조국을 향한 이야기
- 손기정은 OCC(올림픽 위원회) 공식 인터뷰에서 “남의 나라 이름으로 출전했지만, 메달을 따서 기쁜 마음보다 조국의 이름을 부르지 못해 슬펐다”고 밝혔습니다.
- 남승룡은 귀국 직후 “‘조선 청년이 메달을 땄다’는 소식에 시민들이 서울역에 몰려 모두 깃발로 환영했다”는 기억을 전했습니다.
또 "다시는 나라 없는 선수로 흑백 라디오만을 의지해 울지 않기를 바랐다"며, 해방 전까지 금메달을 시계 안에 숨겨 보관했다고 남겼습니다. - 신문과 해외 보도: 『뉴욕타임스』, 독일 현지 보도 등 외신에서도 "동양의 식민지 국가에서 금메달리스트가 나왔다" "전 세계가 주목한 조선 소년의 불굴의 인간 승리"라며 경기 장면, 일장기 삭제 에피소드를 함께 다뤘습니다.
4. 해방 이후, 올림픽의 진짜 ‘한국’이 달린다
-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은 태극기를 들고 사상 첫 ‘대한민국 명의’로 육상, 축구, 레슬링 등 공식 국가대표단을 이루어 출전했습니다.
구기종목 대표 신현준의 증언에 의하면 “런던행은 모두가 빚을 내 도시락을 싸가야 했지만, 모두가 '조국'을 외쳤습니다.”고 남겼습니다. - 그 이후 1988 서울올림픽, 2018 평창동계올림픽까지 세계인의 기억에 남을 스포츠 한류의 현장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빈곤, 일제·분단, 내전 등 힘겨운 현대사 속에서도 '첫 근대 올림픽을 뛴 두 선수의 용기'는 최근까지 한국 스포츠 정신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올림픽 레이스는 끝났지만, 한국인의 도전과 꿈은 그때부터 다시 시작됐습니다.”
– 『한국올림픽 100년사』 해설
참고자료
- 손기정·남승룡 일화(금메달, 동메달, 인터뷰, 자서전)는 『동아일보』 1936년 신문, IOC 공식 기록, 『손기정 자서전』, 『나의 마라톤 인생』, 한국체육사 구술집, 삼천리 등 1차·2차 문헌을 참고했습니다.
- 일장기 삭제·귀국 환영, 학생·시민 반응은 각종 신문 구술, 서울·평양·전국 뉴스·사진 등 근대 언론 기록을 참고했습니다.
- 외신 보도(뉴욕타임스, 독일 보도)는 디지털 뉴스 아카이브, IOC 경주 동영상 등을 참고했습니다.
- 해방 이후 공식 올림픽 참가, 국가대표단, 올림픽 유산 등은 『한국올림픽 100년사』, 서울올림픽기념관, 체육회·KBS·SBS 다큐, 선수/감독 인터뷰, 정부 백서 등을 참고했습니다.
첫 근대 올림픽의 금메달 뒤에는 이름 석 자로 남은 청년, 가족과 식민지 민중, 감춰진 눈물과 환희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