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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유머, 익살, 민중의 풍자와 패러디

by Wisetech 2025. 8. 4.

 

조선시대 유머, 익살, 민중의 풍자와 패러디

조선시대의 유머와 풍자는 오늘날 개그와는 달랐습니다.
권력자의 ‘촌철살인’부터 서민들이 서로를 놀리고, 정치·세태를 패러디하는 풍자까지 웃음은 억압의 시대를 버티는 무기이자 인간의 본능적 에너지였고, 사회 비판의 언어이기도 했습니다.
실제 사료에 남은 에피소드와 해설, 각 유머의 역사적 맥락까지 깊고 재밌게 소개합니다.

출처. 한국문화재단


1. 한양의 핫한 입담 – 관청, 서간에서 쓰인 명문 유머의 배경과 뒷이야기

  • 관료들의 말장난과 풍자 : “쥐도 도적, 고양이도 재판장”
    『연려실기술』에는 한양유수 이가환이 도적을 체포했다는 보고를 하면서 유서 첩장에 굵은 글씨로 “도둑놈이 잡은 도둑놈을 잡았다 하니, 이제 어이두?”라고 쓴 문장이 나옵니다.
    여기서 ‘잡다’는 실제 체포가 아니라 동료 관료에 대한 ‘비꼼(동료들이 서로 공을 뺏는다는 의미)’을 숨긴 풍자였습니다.
    당시 조정에서는 “고양이(나)는 쥐(상대)를 단단히 잡는다고 하지만, 쥐도 어쩌다 고양이 흉내는 낸다”라는 고사로 통상적인 관료싸움과 부패, 잔꾀를 돌려 깎았습니다.
    문서를 읽던 왕이 “이 사또가 참 익살스럽구나. 이런 자가 있으면 조정도 덜 심심하겠다”며 직접 칭찬한 기록도 있습니다.
  • 서간(편지)에 묻어나는 익살, 일상의 개그:
    실학자 박지원은 열하까지 왕복할 때 매번 친구 유득공에게 “출근길 지각이라 칼 대신 거울을 들고 왔네, 내 얼굴이 사무관이라니 우습지 않은가”라고 편지를 썼습니다.
    이는 당시 풍습인 ‘문사 사이 익살 편지’에서 흔하게 쓰인 요소로 ‘거울(자기성찰)’과 ‘칼(권위)’을 반대로 배치해 자신과 회사(관청)의 현실을 재치 있게 꼬집었습니다.
    다른 예로 유득공은 “사돈이 밤에 왔으니, 밥솥을 피해서 방에 숨으라”거나 “호미는 잃어도 모심는 입담은 잃지 마라” 등 현실생활 슬랩스틱도 자주 남겼습니다.
  • 풍자의 맥락:
    관료와 지식인은 직접적으로 왕이나 상사를 비판하거나 불평할 수 없었으므로 편지와 문서, 일상표현을 빌려 돌려치기하는 풍자가 하나의 문화가 됐습니다.
    속담, 우스개 편지, 연회장 유머는 지배층 사이 사회적 ‘스트레스 해소와 연대감’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사또가 계집아이처럼 울고 있으니, 짚신 벗겨 구워도 눈물은 썰렁할 따름이다." – 『연려실기술』 관아 편지

2. 평민과 민중의 촌철살인 – 속담, 야담, 실제 입담의 생명력

  • 양반 놀림, 밑바닥 민중의 반격:
    『청구야담』에는 한 평민이 양반을 두고 “도포 자락이 길수록 속이 더 빈 법이라 들었습니다.” “오얏나무 그늘진 곳에서 뒹굴면 뭐 합니까, 결코 오얏은 맛보지 못하고 잎만 훑으니” 등 신랄한 한마디로 양반들을 무색하게 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이 같은 ‘밑에서 위로’ 돌직구는 시장·장터, 단오잔치 등에서 취객·장수들 입을 타고 유행, 민요와 동요에도 퍼졌습니다.
    그 시절 별명 “주전자 입” “장독대 양반”처럼 직설적 비꼼은 도시와 농촌 어디든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장터 풍속화에서는 ‘양반에게 쌀밥 대신 보리밥을 권하며’ “양반이라 쌀밥만 먹다니, 보리밥 아니면 오래 못 산다”는 상인들의 개그 장면도 볼 수 있습니다.
  • 속담에 담긴 조선의 유머와 풍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지금 힘들어도 사는 게 낫다는 자조), ‘말은 밖에서, 밥은 집에서’(밖에서 아는 체 말고 집에서는 소박하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누구나 약점이 있으니 남 탓 마라)는 각종 속담집, 아동용 교훈서, 구전 민담에도 반복 등장했습니다.
    실제로 ‘욕설’ ‘막말’이 풍자성 속담·민요를 타며 마치 오늘날 유머·패러디처럼 시대를 대변한 ‘밈’으로 작용했습니다.
  • 명랑 에피소드/실화:
    가난한 마을에서는 술동이에 입을 대고 “술은 쪽쪽 빠니, 근심도 쫙 사라지오” 결혼식 밥상에서 “신랑이 건더기도 없이 국물만 마시니, 아내에겐 언제나 진국이려나?” 외출하는 사또를 애 태우는 머슴들은 “사토 마패는 쇠로 만들고, 마음은 죽으로 만드시게요~” 등촌동 신랑, 이문동 처녀 등 실명까지 남아 지금도 지역에서 회자되는 웃음이 많았습니다.
“웃는 놈이 이기는 거고, 똑똑한 놈보다 웃긴 놈이 더 기억에 남는다.” — 조선 서당 훈장 일기

3. 민요와 시장통·장터의 해학과 패러디

  • 시장통 판소리와 장타령의 실전 개그:
    시장 한복판에서 쌀장수, 떡장수, 구경꾼이 주거니 받거니 "찹쌀떡 두 개면 나는 이승에서 배 두 개 거뜬히 내놓을 테이~" "떡집 딸은 도깨비보다 센 집의 보배지, 마님도 못 넘본다" 같은 애드립이 실시간 패러디로 이어졌습니다.
    구전 민요·판소리 등에도 ‘만석꾼 집엔 빈 찬합, 도련님네 집엔 물만’ 같은 사회비판적 개그가 담겼습니다.
  • 동계 민요와 겨울 해학:
    모로리 꽁꽁, “쌀밥에 된장국 찾는 마님이 있다면, 이 동네 멍멍이도 신랑감이겠다” 겨울철 김장 때면 김칫국물 한 입 삼키며 "올해는 배추값이 양반값이지, 양반은 아예 없었으면 좋겠다" 등 계절 따라 달라지는 생활유머도 구전 민요에 풍부하게 남았습니다.
  • 실제 사례와 효과:
    『조선민요대관』과 『한국민속대관』에는 장터에서 구전된 민요와 패러디가 아예 심각한 시국이나 고난까지 위로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돼 있습니다.
    서민들은 “음담패설, 까칠한 농담, 슬랩스틱 개그”가 가족, 이웃, 동료 모두를 함께 웃기고 유대감을 다지게 했다고 회상했습니다.
“노래 한 곡에 한겨울 추위도 잊고, 웃음 한 방에 하루도 버텼다.” – 부산 장터 노인 구술, 1950년대 민속채록

4. 왕실·권력자도 피하지 못한 유머 코드

  • 정조(1752~1800)의 연회 유머:
    『정조실록』에는 임금이 신하들에게 "이 동짓날엔 모락모락 피어나는 찰떡이 없으니, 신하의 목소리라도 시끄럽게 만들어 달라"며 연회 분위기를 띄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신하들이 쑥스럽게 웃으면서 “미꾸라지 두 마리만 있으면 임금님도 궁중의 전설이 되겠습니다!” 라고 화답한 장면도 남아 있습니다.
  • 채제공(1720~1799)의 해학과 익살:
    정례 신문에서 정조가 물가 오름 이유를 묻자, 채제공이 "대왕께서 자주 황금색 용포를 입으시니 염료집에서 재고가 없다며 울고 있습니다."라고 답해 궁전이 한바탕 웃음으로 들썩였다고 합니다.
    일부 연회에서는 관리들이 궁녀와 악공 흉내, 도루묵 장수 역할을 하며 분위기를 즐겁게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 왕실 서간문 유머와 감정:
    왕비나 세자가 “보리밥이 양반의 유일한 벗”이라든가, “효종이 눈온 밤에 사또 껍질 벗기기 놀이를 따라하며 궁중이 웃었다”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승정원일기』에 남았습니다.
“임금이 웃음의 첫 주자가 되면 백성이 배불리 산다더라.” – 『정조실록』

참고 자료

  • 조선시대 유머·풍자·야담·민요·소설 등은 『연려실기술』, 『정조실록』, 『청구야담』, 『조선민요대관』, 『장화홍련전』, 『흥부전』, 『춘향가』, 『승정원일기』, 『한국민속대관』 등 1차 고문서와 현대 민속·문학 논문을 참고했습니다.
  • 각 유머의 맥락(왕실/관료/민중/시장/가족)에 따라 실제 용례, 구술·지역적 맥락도 분석해 서술했습니다. 각색·허구적 소설 유머는 사실과 구분해 표기했습니다.

웃음은 언제나 사회의 약자, 현실의 고단함을 넘어서는 살아있는 인간의 본능이자, 가장 안전한 저항의 언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