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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중심의 화려한 식민지 근대: 카페, 모던걸, 식민도시의 명암 경성 중심의 화려한 식민지 근대: 카페, 모던걸, 식민도시의 명암1920~30년대, 경성(서울)의 한복판은 “조선 근대”의 모든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공간이었습니다.백화점, 극장, 모던 걸, 커피집, 신문, 신여성, 미인대회로 상징되는 화려한 겉모습— 그런데 이 번쩍거림 뒤엔 일제의 지배 현실과, 서로 뒤섞인 인물들의 고뇌, 그리고 오늘과는 또다른 욕망과 시대 감각이 숨겨져 있었습니다.오늘은 신문·사진·소설·실제 인물 에피소드와 팩트 체크를 바탕으로 ‘경성 근대’라는 큰 스크린을 펼쳐봅니다.1. 경성역 앞, 백화점과 극장 그리고 카페의 신세계1929년, 서울역(경성역) 앞에는 미츠코시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이 성대하게 문을 열었습니다.모던 걸·모던 보이들은 삼삼오오 백화점 쇼윈도를 구경했고, 신문 기사(.. 2025. 8. 1.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날 광복의 하루: 1945년 8월 15일의 회고1945년 8월 15일, 여름의 끝자락—전 국민의 숨결이 멈추고, 다시 뛰기 시작한 그날.‘해방’이라는 말의 뜻조차 아직 생소하던 하루 그날, 서울과 부산, 개성, 시골마을까지 각 도시 사람들은 어떻게 이 순간을 맞았을까요? 1. 서울의 해방 – 라디오에서 울린 ‘조선 독립’정오 12시, 경성방송국: 시민 이정현(중구 상점주)은 “가게 라디오에서 '천황 폐하가 전쟁을 끝낸다'는 방송이 흘렀다. 공허한 침묵 뒤, 누군가 속삭이듯 '드디어 일본이 졌다!'고 외쳤습니다.”고 회상했습니다(한겨레 구술채록, 1995).이화여고생 신인희(17세)는 학교 운동장에서 "선생님이 칠판에 '독립'이란 단어를 크게 썼습니다. 모두 한순간 멍해 있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태극기가 뭔지.. 2025. 8. 1.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이름 임시정부(임정)의 이름으로 살아간 사람들1919년 4월 상하이, 조선인 망명자들이 허름한 방에 둘러 앉았습니다.그들은 조국을 잃은 한 많은 민족이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려는 최초의 시민들이었습니다. 1. 임시정부의 시작, ‘새로운 정부’로 산다는 것현장 기록: 1919년 4월 11~13일, 상하이 프랑스조계 임시정부 청사. 이승만, 이동휘, 안창호, 김구, 박은식, 조소앙 등 29명이 모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장"을 의결했습니다.박은식은 "우리 이 정부야말로 망국 백성의 우슴과 눈물이 한데 모인 혼이다."고 썼습니다.송병조, 안창호의 목소리: "누구는 내일 잡혀갈 각오로 나오고, 누구는 병든 몸으로 계단을 옮겨야 했다. 우리는 나라보다 먼저 사람을 믿고, 이름 없는 이들을 .. 2025. 7. 31.
3·1운동, 만세의 물결: 거리로 나선 인물들의 진짜 목소리 3·1운동, 만세의 물결: 거리로 나선 인물들의 진짜 목소리1919년 3월 1일, 조선을 뒤흔든 만세의 기적은 정치 지도자보다 진짜 평범한 사람과 현장의 인물들이 만든 혁명이었습니다.이 글에서는 3·1운동을 이끈 대표 주역과 학생, 여성, 구두닦이, 종교인, 일본 헌병, 현장 기자 등 각각의 목소리와 사료 속 생생한 반응을 중심으로 ‘역사의 증언’과 ‘거리의 외침’ 그 자체를 따라가 봤습니다.1. 탑골공원의 아침, 만세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최팔용과 학생들: 1919년 3월 1일 정오, 서울 탑골공원에 모인 3천 명 군중, 그 한복판에서 23세 청년학생 최팔용과 동지들(정재용 등)이 선언서를 낭독했습니다.“선언서 문장을 소리 높여 읽다 세 번 목이 막힐 정도로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그는 후일 증언했습니다... 2025. 7. 31.
개항과 충격: 근대의 문을 열었던 그 하루, 강화도조약 이야기 개항과 충격: 근대의 문을 열었던 그 하루, 강화도조약 이야기1876년 2월 27일, 조선은 한겨울 바람이 휘몰아치는 강화도에서 운명을 건 첫 외교전의 문을 열었습니다.이날 맺어진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는 근대의 시작이었지만, 수많은 조선인과 일본인, 그리고 세계인에게 충격을 안긴 사건이기도 했습니다.1. 조선에 다가온 검은 바다 – 불안의 전조운요호 사건: 1875년 여름,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 앞바다에 출현해 포를 쏘았다”는 전보가 궁궐에 긴급 보고됐습니다.고종의 반응: "왜국이 사소한 일로 이렇듯 위세를 부리는가? 우리 군사와 민심은 아직 믿을 만한가." – 『고종실록』조정 대신들은 “바야흐로 서양 물결이 바다를 메운다.” “일본 앞에 또 압록강에 러시아란 어마어마한 짐승까지…”라며 밤새 .. 2025. 7. 31.
고려의 국제감각 – 천년 전 한류였을까? 고려의 글로벌 교류는 오늘날의 한류 만큼 신선했다.“한류”가 세계를 뒤흔드는 지금, 우리 역사에서 글로벌 트렌드의 원조라 할 만한 시기가 또 있을까요? 실은 고려야말로, 사회 전체가 ‘국제화’와 ‘문화융합’에 중독됐던 놀라운 시대였습니다.1. 벽란도의 북적임 – 고려의 글로벌 무역항 VS K-콘텐츠 수출항고려 최대의 무역항 벽란도에는 송, 원, 일본, 아라비아(페르시아) 상인, 사신, 기술자까지 몰려왔습니다.당시 수입품은 유리잔, 은제품, 비단, 향신료, 각종 직물·서적이었고, 수출품은 고려청자, 인삼, 은, 인견(견직물)이었습니다.사료/에피소드: ‘고려사’ “벽란도에서 오늘 밤에도 악사(아랍·중국인)와 통역관, 승려, 무역상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였다”는 구절이 남아 있습니다.‘고려의 유리잔’은 11세기.. 2025.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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