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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명사건과 수사의 현장 – 삼방, 포도청, 형방으로 보는 진짜 조선 CSI 조선시대 명사건과 수사의 현장 – 삼방, 포도청, 형방으로 보는 진짜 조선 CSI오늘날의 경찰서, 검찰처럼 조선에는 삼방(三房), 포도청, 형방, 그리고 암행어사라는 공안기관이 있었습니다.삼방은 한성부 산하의 세 부서로 서울의 치안과 절도·살인·강도 등 중요 사건을 주로 다뤘습니다.포도청은 밤길 순찰, 긴급 출동, 여성·아동 범죄, 도둑·강도 검거에 특화되었습니다.형방은 형조 직속의 재판·형벌 담당 기관으로 고문, 증거, 알리바이, 판결문 관리가 주요 임무였습니다.이들 기관은 억울함을 직접 호소하는 신문고제와 반복 취조, 암행어사의 비밀 수사 등 ‘조선판 CSI’로서 각양각색의 명사건과 수사극을 만들어냈습니다.1. 포도청의 밤 – 마포 강도사건, 삼방의 집요한 추적사건의 시작:17세기 숙종 9년, 장마가.. 2025. 8. 9.
고려 시대 명탐정: 어사 박의중의 실전 범인 색출법 고려 시대 명탐정: 어사 박의중의 실전 범인 색출법초겨울 새벽, 고려 정주(定州, 지금의 강원도 평창 일대) 시골 외곽에 작은 발걸음 소리가 들렸습니다.새로 파견된 어사 박의중은 검은 두루마기에 신분패를 품고, 마을 입구에 들어섰습니다.들판에는 짙은 안개가 감돌고, 담장 사이로 불안한 백성들의 시선이 어사 행렬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절박한 표정의 아낙이 조심스레 “어사 나리, 억울한 일을 꼭 밝혀주십시오”라고 속삭였습니다.이렇게 시작된 박의중 어사의 실전 수사는 당대 수많은 미제 사건, 억울한 옥살이, 탐관오리의 비리와 마주했습니다.1. 실존 명탐정, 박의중은 누구였나?평민이 어사가 된 드문 이야기:박의중은 14세기 고려 말 강원도 평민 집안 출신으로, 관료 추천과 왕의 파격 발탁으로 중앙 어사(監察御史.. 2025. 8. 8.
고대 신라·백제 ‘피의 장막’ – 왕실 사건과 신단(神斷) 수사의 명암 고대 신라·백제 ‘피의 장막’ – 왕실 사건과 신단(神斷) 수사의 명암고대 한반도의 삼국시대—신라, 백제, 고구려의 왕실은 화려하고 신성해 보이지만 실상은 왕위, 권력, 가족, 궁중 암투로 피와 눈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오늘은 그 속에서 ‘사람’의 죄를 ‘사람’이 아닌 하늘(神)이나 신단(神斷, 신의 계시)으로 풀어내려 했던, 옛날의 특별한 수사법과 그 속의 에피소드를 쉽고 흥미롭게 소개합니다.1. 신단(神斷) 수사, 뭐가 특별한가요?"신단"(神斷)이란, 지금처럼 범죄 현장에 CCTV나 과학 감식이 없던 옛날, 왕이나 신관(무당, 도사, 점쟁이)이 ‘꿈, 점, 오행, 하늘 징조’ 등에 따라 범죄의 단서·판결을 내리는 방식이었습니다.우리 조상들은 당시 “하늘의 뜻”이나 “기이한 꿈”, “특이한 동물 등장의.. 2025. 8. 8.
임진왜란, 모두가 참여한 국민전쟁 임진왜란, 모두가 참여한 국민전쟁 1592년 임진년, 일본군이 한반도에 상륙했습니다.역사책 속엔 이순신과 대장군들만 등장하지만, 전쟁의 불길 한복판에서 진짜 ‘전력’이 된 이들은 바로 농민, 여성, 상인, 평범한 백성이었습니다.1. 농민이 군인이 되던 날 – 남도 평야의 붉은 옷 군단의병장 곽재우(1552~1617), 붉은갓 군단의 탄생:곽재우는 함안(경남) 촌부 집안의 양반 출신이었습니다. 왜군이 근처로 들이닥치자 고향 농민 50~100명을 모아 맨손에 죽창‧호미‧농기구를 들려줬습니다.실록과 전승에 따르면 그는 빨간 천을 두르고 “홍의장군”이라 칭하며 “밭은 내년에도 있으나 나라는 한 번 사라지면 끝”이라고 외쳤습니다.의병의 첫날, 어느 소년은 “우리 집 벼루까지 들고 달려갔고, 어느 어머니는 쌀 주머.. 2025. 8. 8.
조선의 명첩자들 – 박정량, 최세진 조선의 명첩자들 – 박정량, 최세진화려했던 첩보 영화, 스파이 소설만큼이나 조선에도 정보전, 첩자, 암행어사가 실제로 존재했습니다.박정량, 최세진 등 이름이 기록된 국내외 정보전쟁의 선구자들이 어떻게 세상을 움직였고, 어떤 에피소드와 전략에 목숨을 걸었을까요?1. 박정량(朴廷亮 1571~1648), 조선판 ‘첩자마스터’의 탄생16세기 후반~17세기 초, 명-후금 전쟁과 조선: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조선은 ‘정보전의 미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였습니다.박정량, 첩보전의 중심에 서다:『조선왕조실록』과 인조대의 사초(史草)에 따르면, 박정량은 1627년 정묘호란 당시 북방 수비사령관으로 배치되어 “심야에 밀사를 통하여 후금군 동태와 이동 타이밍, 식량 보급선을 끊는 작전을 현장에.. 2025. 8. 7.
이성계와 위화도 회군 – 외교·전쟁·쿠데타를 모두 이뤄낸 반전 이성계와 위화도 회군 – 외교·전쟁·쿠데타를 모두 이뤄낸 반전1388년, 고려는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었습니다.요동원정 명령을 앞에 둔 최정예 군대와 이성계 장군, 왕명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한 무장들, 역사의 흐름을 바꾼 위화도 회군— 이날의 선택은 전쟁뿐만 아니라, 새로운 나라 ‘조선’의 운명으로 이어졌습니다.1. 위화도와 고려군의 길 – 전쟁명령과 동요배경 – 고려 후기의 위기: 1388년, 명(明)나라가 요동(류허/요령성) 일대에 철령위를 설치하며 토지와 국경 분란을 일으키자, 고려 조정은 친명파 vs 반명파로 분열했습니다.권문세족과 친명 신하들은 “고려가 독립을 지키려면 먼저 요서 합병을 저지해야 한다”며 요동 정벌을 결의했고, 이성계(1335~1408, 무장/최정예 장군)는 우왕 명령으로 최영(.. 2025.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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