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로 – 불과 냄비의 조화
신선로 – 불과 냄비의 조화1. 신선로의 화려함과 풍미, 조선 최고의 연회요리조선 후기부터 신선로는 여름 찬연회, 겨울 국왕의 궁중 진연, 명절이나 왕실 대사에서 반드시 빠지지 않는 천하의 요리였습니다.구리, 놋쇠, 혹은 주철로 빚은 원통형 냄비 한가운데에는 숯불이나 석탄 화로를 넣는 긴 굴뚝이 나 있으며, 뜨거운 국물이 끓는 동안 냄비 바깥 원형 홈마다 다양한 재료가 가지런히 놓입니다.고기잡채, 고기 완자, 조기, 전복, 문어, 해삼, 연근, 표고버섯, 밤, 대추, 두부, 미나리, 단호박, 전, 지단, 달걀, 풋고추, 당면, 알배추까지 재료가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손질되어 차례차례 화려한 꽃잎처럼 배치됩니다.몽글몽글하게 떠오르는 기름 방울,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푸짐한 국물 냄새가 상 주변을 휘감습니..
2025. 8. 18.
불고기와 구이의 역사 – 불맛에 담긴 전쟁, 시장, 근대 식문화를 말하다
불고기와 구이의 역사 – 불맛에 담긴 전쟁, 시장, 근대 식문화를 말하다1. 맥적에서 불고기까지 – 불 위의 고기는 어떻게 태어났나고구려 시대 사서와 벽화에는 ‘맥적(貊炙)’이 자주 등장합니다.맥적은 주로 소, 양, 사슴과 같이 길게 썬 고기를 대나무 꼬치에 꿰어 장작불, 숯불 위에 구운 구이로 고기 표면은 노릇노릇 바삭하게 익혀 진한 불향이 코에 스며듭니다.소금만 슬쩍 뿌려 육즙이 고기 안에 그대로 남아 있고, 한입 베어물면 껍질은 바삭하고 속살은 부드럽고 촉촉합니다.이 원시 구이법은 사냥, 전쟁, 축제 때마다 등장했고, 곡물밥·술이나 산야 채소와 곁들이는 풍습이 삼국을 거치며 계승되었습니다.현대 숯불구이, 꼬치구이의 원형이 바로 이 맥적입니다.2. 조선과 평양구이 – 시대 따라 달라진 양념과 먹는 법..
2025. 8. 17.
떡과 한과 – 왕의 치아, 명절의 추억, 선물의 심리
떡과 한과 – 왕의 치아, 명절의 추억, 선물의 심리1. 백설기의 부드러움, 송편의 고소함 – 재료와 맛의 깊이백설기는 반짝이는 멥쌀가루를 고운 체로 쳐서 소금, 물을 약간 섞은 뒤 무쇠시루에 쪄올려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한 식감을 자랑합니다. 입에 넣으면 입자가 곱게 녹아들고, 고소한 향과 담백한 단맛이 남습니다. 왕실에서는 백설기의 쫄깃함과 부드러움이 임금의 약한 치아에 딱 맞아 아침마다 찻상에 빠지지 않고 올랐다고 『승정원일기』에 나옵니다.송편은 찹쌀가루를 꿀물로 반죽해 솔잎에 올린 뒤, 깨·꿀·팥·콩·밤 등을 속으로 삼아 손바닥만 하게 빚어서 찜입니다. 솔잎의 상쾌한 향이 밥알 하나하나에 스며들어 한입 깨물 때마다 고소한 깨가루, 달착지근한 꿀 속, 콩의 포슬함이 섬세하게 터집니다. 조선 중기 명절상..
2025. 8. 17.
김치 이야기 – 우거지부터 '양념김치 혁명'까지
김치 이야기 – 우거지부터 '양념김치 혁명'까지1. 맑은 국물, 소박한 나물—김치의 탄생김치의 원형은 야생 나물, 무생채, 우거지, 갓과 배추, 오이 등 생채 형태로 소금을 넣고 삭힌 단순한 절임에서 시작합니다.고려~조선 초, 김치는 맑은 소금물이나 약간의 마른 고추, 마늘, 생강, 깨, 들깻가루로 간을 한 뒤 물에 담가두었다가 국물째 떠 먹는 “물김치·나박김치·우거지 김치”가 주류였습니다.이때 김치의 색은 연분홍, 옅은 초록, 맑고 투명했습니다.입 안에서는 신맛과 짠맛, 나물의 쌉쌀함이 아삭아삭 어우러집니다.뚝배기에 담긴 김치국 하나에 들깻가루, 주먹밥, 두부, 조기구이와 곁들여 식사 시간마다 ‘밥맛을 돋우는 조연’이었습니다.오늘의 물김치·보쌈김치와 비슷한 맛이지만 배추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에는 잎..
2025. 8. 17.
삼계탕과 닭백숙 – 병과 여름, 건강의 전통 스토리
삼계탕과 닭백숙 – 병과 여름, 건강의 전통 스토리1. 닭백숙의 원류 – 고기 한 마리, 약초 한 줌, 맑은 국물닭백숙은 신선한 토종닭 한 마리를 내장 제거 후 소금을 살짝 뿌리고, 대파·마늘·생강·황기·엄나무 등 건강약초를 듬뿍 넣어 맑은 물, 커다란 솥에 통째로 넣고 약한 불로 오래도록 고아낸 요리입니다.닭고기는 익으면서 부드럽게 살이 찢어지고, 속은 밥알처럼 하얗고, 국물엔 진하고 쌉쌀한 약초향, 닭기름이 고소하게 둥둥 뜨고, 뼈 속까지 우려난 감칠맛이 입안에 진하게 남습니다.삶은 닭을 찢어 냄비에 담고, 국물 한 국자 떠먹으면 고기의 부드러운 단맛과 각종 뿌리채소의 향기, 우리 입맛에 익숙한 진한 닭국물 맛이 퍼집니다.조선 시대에는 흔한 일상식이기보다 영조대『동국세시기』, 『임원경제지』 등에서 병..
2025. 8. 16.
미역국 – 왕비의 생일상부터 민가의 산후조리까지
미역국 – 왕비의 생일상부터 민가의 산후조리까지1. 삼국~조선, 바다의 풀 한 줄기에서 시작된 음식미역은 신라·백제 고분 벽화와 삼국유사에도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바다나물입니다.고대의 미역은 바다 냄새와 함께 검푸르고 투명한 색감이 살아 있고, 삶아 올리면 뚝배기 안에서 진한 감칠맛이 돌며 풋풋한 해조, 바다 짠냄새, 바람의 신선함이 입안을 감쌉니다.햇미역이나 마른미역을 물에 불려 투명하게 만든 뒤, 소고기나 멸치, 생선살을 함께 넣고 약불에서 오래 끓이면 국물은 뽀얗고 달달한, 미역이 스스로 식감과 영양을 풀어내는 부드러움이 남습니다.따끈한 밥 한숟갈, 깍두기, 간장 한 점만으로도 구수함과 건강함, 그리고 생명력의 상징이 더해집니다.미역에는 철분, 칼슘, 아미노산, 비타민 등 산모·아이·노인 누구나 ..
2025. 8.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