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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 Society101

분단의 상징, 휴전선: 휴전협정~DMZ 비화 휴전선, 분단의 상징: 휴전협정~DMZ 비화1953년 7월 27일, 강원도와 경기도, 황해도를 가로지르는 길고 매서운 선 하나가 그려졌습니다.그 선은 ‘휴전선’이었으며, 곧 ‘분단’과 ‘비극의 DMZ’가 됐습니다.이 땅을 가른 그날의 현장, 판문점 군인과 가족·민간인, 그리고 그 뒤로 남겨진 사람들과 비무장지대의 현실까지 구체적 인물과 장면, 사료 위주로 풀어봤습니다.1. 1953년 판문점, 정전회담UN군 정전위 통역 장진익은 “이날 아침 판문점은 밤새 굵은 장대비가 내렸습니다. 미국, 중국, 북한, 한국 대표단이 모두 진흙탕 청사 앞에 줄지어 섰습니다. 북의 장군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휴전문서에 ‘손이 떨려 도장이 번졌다’고 웃으며 말했습니다.”고 구술했습니다(국가기록원).미국군 참전용사 로버트 타일러.. 2025. 8. 2.
한국전쟁: 피난길, 전쟁의 일상, 민간인의 시선 한국전쟁: 피난길, 전쟁의 일상, 민간인의 시선1950년 6월 25일 새벽, 전쟁은 군인이나 지도자가 아닌 이름 없는 평범한 가족들의 하루를 산산조각 냈습니다.정부문서, 실화수기, 미국군 사진, 구술사 등 다층적 사료로 진짜 “민간인의 전쟁”을 인물과 현장 중심으로 재구성했습니다.1. 강변의 새벽 – 피난민이 된 가족의 첫 발걸음서울 용산, 식당주 이길환: “새벽 4시, 기관총 소리가 퍼지고 피난민 줄이 골목을 가득 메웠습니다. 엄마는 문패를 떼어 품에 넣었고, 나는 쌀, 이불 보따리만 겨우 챙겼습니다.” – 국가기록원 구술채록, 2005함경도 피란민 소년 박광수: “가진 건 없었지만, 산으로 피할 때 신문지와 보자기, 온 가족이 덮을 이불 한 장뿐이었습니다. 밤에는 신문지에 포개어 자고, 낮에는 미군 .. 2025. 8. 1.
식민도시 경성의 명암 경성 중심의 화려한 식민지 근대: 카페, 모던걸, 식민도시의 명암1920~30년대, 경성(서울)의 한복판은 “조선 근대”의 모든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공간이었습니다.백화점, 극장, 모던 걸, 커피집, 신문, 신여성, 미인대회로 상징되는 화려한 겉모습— 그런데 이 번쩍거림 뒤엔 일제의 지배 현실과, 서로 뒤섞인 인물들의 고뇌, 그리고 오늘과는 또다른 욕망과 시대 감각이 숨겨져 있었습니다.오늘은 신문·사진·소설·실제 인물 에피소드와 팩트 체크를 바탕으로 ‘경성 근대’라는 큰 스크린을 펼쳐봅니다.1. 경성역 앞, 백화점과 극장 그리고 카페의 신세계1929년, 서울역(경성역) 앞에는 미츠코시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이 성대하게 문을 열었습니다.모던 걸·모던 보이들은 삼삼오오 백화점 쇼윈도를 구경했고, 신문 기사(.. 2025. 8. 1.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날 광복의 하루: 1945년 8월 15일의 회고1945년 8월 15일, 여름의 끝자락—전 국민의 숨결이 멈추고, 다시 뛰기 시작한 그날.‘해방’이라는 말의 뜻조차 아직 생소하던 하루 그날, 서울과 부산, 개성, 시골마을까지 각 도시 사람들은 어떻게 이 순간을 맞았을까요? 1. 서울의 해방 – 라디오에서 울린 ‘조선 독립’정오 12시, 경성방송국: 시민 이정현(중구 상점주)은 “가게 라디오에서 '천황 폐하가 전쟁을 끝낸다'는 방송이 흘렀다. 공허한 침묵 뒤, 누군가 속삭이듯 '드디어 일본이 졌다!'고 외쳤습니다.”고 회상했습니다(한겨레 구술채록, 1995).이화여고생 신인희(17세)는 학교 운동장에서 "선생님이 칠판에 '독립'이란 단어를 크게 썼습니다. 모두 한순간 멍해 있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태극기가 뭔지.. 2025. 8. 1.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이름 임시정부(임정)의 이름으로 살아간 사람들1919년 4월 상하이, 조선인 망명자들이 허름한 방에 둘러 앉았습니다.그들은 조국을 잃은 한 많은 민족이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려는 최초의 시민들이었습니다. 1. 임시정부의 시작, ‘새로운 정부’로 산다는 것현장 기록: 1919년 4월 11~13일, 상하이 프랑스조계 임시정부 청사. 이승만, 이동휘, 안창호, 김구, 박은식, 조소앙 등 29명이 모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장"을 의결했습니다.박은식은 "우리 이 정부야말로 망국 백성의 우슴과 눈물이 한데 모인 혼이다."고 썼습니다.송병조, 안창호의 목소리: "누구는 내일 잡혀갈 각오로 나오고, 누구는 병든 몸으로 계단을 옮겨야 했다. 우리는 나라보다 먼저 사람을 믿고, 이름 없는 이들을 .. 2025. 7. 31.
3·1운동, 만세의 물결: 거리로 나선 인물들의 진짜 목소리 3·1운동, 만세의 물결: 거리로 나선 인물들의 진짜 목소리1919년 3월 1일, 조선을 뒤흔든 만세의 기적은 정치 지도자보다 진짜 평범한 사람과 현장의 인물들이 만든 혁명이었습니다.이 글에서는 3·1운동을 이끈 대표 주역과 학생, 여성, 구두닦이, 종교인, 일본 헌병, 현장 기자 등 각각의 목소리와 사료 속 생생한 반응을 중심으로 ‘역사의 증언’과 ‘거리의 외침’ 그 자체를 따라가 봤습니다.1. 탑골공원의 아침, 만세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최팔용과 학생들: 1919년 3월 1일 정오, 서울 탑골공원에 모인 3천 명 군중, 그 한복판에서 23세 청년학생 최팔용과 동지들(정재용 등)이 선언서를 낭독했습니다.“선언서 문장을 소리 높여 읽다 세 번 목이 막힐 정도로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그는 후일 증언했습니다... 2025.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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